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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나일영 기자]
해남에서 출발한 한트 국토종주 1기 팀이 10월 25일 진안고원의 마이산길을 걸었다. 이날 25km 가량 걷기를 마치고 난 저녁, 마침 숙소 앞의 마이산공원에서 열리고 있던 지역 축제에 참가했다. 흥에 겨워 놀다 보니 마지막엔 무대 앞 마당에 단체로 나가 춤까지 추게 되었다. 단원 중 한 분은 30년만에 춤을 춰 보았단다. 나를 포함해 아마 단원들 거의가 30년까진 아니라도 춤을 춰 본 지 수십년은 된 것 같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절반을 훌쩍 넘는 동안 참 바쁘게도 살았다. 아니, 생각해보니 젊은날 반짝 타오른 걸 제외하면 어린 학창 시절부터 인생의 거의를 바쁘게 살았다. 국토종주 단원들에게 국토종주는 하나의 춤사위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미뤄뒀던 것을 너울너울 풀어내는 인생의 춤사위이다.
지도에 없는 길을 찾아 나서다
어젠 마이산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망할 수 있는 용마산을 넘었었다. 은수사로 암마이산과 숫마이산 사이 천왕문을 통과해 진안 군청을 지나고 용담호 상류 마을인 상전면 교동마을에서 걷기를 마쳤었다. 어제의 걷기의 감동이 가시지 않은 채로 걷기를 마친 곳에서 다시 걷기를 이어간다.
▲ 금강 상류의 물줄기가 용담호로 합해지는 곳. 왼쪽에 우리가 건너는 죽도교가 보인다.
ⓒ (사)사람길국토종주
10월 26일 오늘은 용담호변을 걷는다. 용담호는 호안에 별다른 시설물이 없이 산줄기만 거대 호수를 싸고 있어 자연 풍경에 온전히 빠져드는 장관을 만들고, 신비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또 고원 지역 답게 물안개의 조건인 바람이 적고 일교차가 커서 수면 위로 춤추듯 아침 하얀 물안개가 몽환적이다.
출발해서 금강 상류가 용담호에 합류하는 곳의 죽도교를 건너고 있는데, 혼자 아침 러닝하는 분이 8km를 순식간에 달려갔다가 어느새 되돌아오신다. 국토종주 원칙대로 먼저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니, "사진 찍어드릴까요?"라는 답으로 돌아왔다. 뜻밖의 호의에 감사하게도 소중한 사진을 남기고, 다리 건너 용담호 둘레길로 들어섰다.
말이 둘레길이지 이 길의 공식 명칭은 없다.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전국의 많은 길을 걸어봤어도 이렇게 오붓하게, 넓고 편안하게, 멋진 경관과 함께하는 호반길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 아름다운 길이 이어진다. 숨겨두고 오래오래 때 타지 않게 간직하고 싶은 길이다. 명칭이 없으니 일단 용담호반길이라고 해 둔다.
때 아닌 고원 호숫가 깊은 카페
용담호반길 초입의 호숫가에 의외의 멋진 카페가 나타난다. 카페로 향하는 길가부터 갈대와 꽃을 장식한 감각이 남다르다. 아침을 일찍 먹고 출발한 터라 커피가 고팠다. 유혹이 세다. 누군가 말한다.
"아, 커피 한 잔 하면 좋겠다."
국토종주하면서 시작부터 커피숍에 간 일이 없기 때문에 포기 상태에서 한 말이었다. 다른 단원이 말을 받는다.
"아직 문 안 열렸을 거야."
포기는 강화된다. 지금 시간이 아침 8시 40분이다. 그런데 뜻밖의 반전이 생겼다. 문이 열려 있다. 창 안을 보니 불도 켜져 있다. 뜻하지 않았던 기배기 카페에 들렀다. 안은 밖보다 훨씬 놀라웠다. 흰색 벽과 이중 기둥으로 멋스러움을 연출한 실내는 유럽의 어느 호숫가 성이라 해도 부럽지 않을 것 같다.
창 밖의 호수는 청초한 빛에 물들고, 너른 데크에 하나둘 나뭇잎이 떨어지고 있다. 그제만 해도 숨막히는 도시에 있었는데, 먼 고원 호숫가, 깊고 조용한 카페에 앉아 차 한 잔의 여유라니 꿈 같다.
▲ 카페 앉은 곳에서 창 너머 가을이 활짝 핀 데크와 청초한 용담호가 손에 닿을 듯 한 눈에 들어온다.
ⓒ (사)사람길걷기협회
카페를 나왔는데 카페 사장님이 "이거 갖고 가세요" 하며 급히 뛰어나오신다. 우리가 점심 식사 걱정하는 얘기를 들으셨을까, 냅킨에 오징어포 여러 장을 싸서 건네주신다. 국토종주를 하며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곤 한다.
국민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는 꿈
우리의 국토종주는 어떤 다른 목적을 갖지 않는다. 이목을 받거나 모금을 하거나 여러 수단으로 국토종주가 이용되는 것을 보곤 한다. 국토종주는 수단이 아닌 그 자체가 목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국토를 제대로 볼 수 있다. 우린 우리 국토의 향기를 맡기 위해 걸을 뿐이다.
지역민을 만나면 많이 듣는 얘기 중 하나가 "나도 가고 싶어요", "저도 따라 갈래요"이다. 식당에서 하루종일 고된 일을 하는 할머니에게도, 밭에서 구슬땀을 흘리던 아저씨에게도, 국토종주는 하나의 꿈일 수 있다.
내가 일해온 터전, 숱한 세월 묵묵히 땀흘려며 지켰던 이 땅의 실체를 보는 것은 삶의 한 줄기 섬광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우리 국토의 주인공들을 모시고 같이 이 길을 걷고 싶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이 땅을 걷는 날 우리 모두는 하나로 연결될 것이다.
▲ 용담호반길 용담호를 낀 산자락을 따라 호반길이 조성돼 있다.
ⓒ (사)사람길걷기협회
호젓하고 아름다운 호반길을 걸어간다. 용담호를 낀 산자락 호반길을 걷는 길에 산허리를 휘돌고 넓은 수면을 뒤덮어가는 호수가 깊고 맑고 청명한 아름다움으로 빛난다. 그런데 용담호반길 초반(길 시작점부터 650m 거리)에 생각지도 못했던 동물을 만났다. 말의 귀를 닮아 이름 붙은 마이산이 고양이로 둔갑해 있다.
심상치 않다. 뒤로 대덕산과 고산, 감투봉이 버티고, 앞에 용담호를 안고 있는 상전면의 호반길에 마이산이 고양이 모습을 하고 나타난 것이다. 머리와 몸체와 꼬리까지 완전한 모습이다. 우리가 어제 지나온 마이산 남쪽 2km 정도 앞 마을인 평지리에도 고양재라고 불렀던 고양이혈이 있었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 장수 이어령이 와서 고양이혈이 좋은 혈기라 하여 붓으로 능선을 끊었다는 얘기가 전한다(진안문화원 발간 <마이산 학술연구> 중 '마이산지역의 민간신앙', 이필영, 2014).
고양이 형상으로 나타난 마이산
여기는 마이산에서 직선거리로 11km 정도 떨어진 곳이라 풍수적으로 마이산의 기가 영향을 미치는 지역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 마이산이 고양이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풍수의 형국으로 볼 때 의미가 있다. 고양이 형국은 풍수적으로 나쁜 기운을 막고 평화와 행운을 불러온다.
▲ 마이산이 고양이로 보이는 곳 용담호반길에서 용담호 산줄기 뒤로 완벽한 고양이 모습이 보인다.
ⓒ (사)사람길걷기협회
고양이 형국이 나왔으니 내친김에 고양이 얘기를 해보자. 조선시대에 고양이는 장수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서양에서 고양이가 9개의 생명을 가졌다고 할 만큼 위험을 피하는 능력과 생명력을 높이 산 것과 일맥상통한다. 고양이 발생지인 이집트는 고양이를 바스테트 여신의 현신으로 신성시했다. 고양이를 죽인 사람은 극형에 처했고, 죽은 고양이는 미라를 만들어 장례를 치러 주었다.
농경사회에서 식량을 저장해야 할 필요와 쥐를 잡는 고양이의 사냥 본능이 고대부터 인간과 공생 관계를 만들었다. 조용하고 독립적이며 대소변도 스스로 알아서 하는 특성 상 인간과 교감을 나누는 동반자의 지위도 얻었다. 실제로 인간과 고양이의 상호작용이 옥시토신을 분비해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완화하고 심장 건강을 개선하는 등 정신·신체적 이점을 준다는 연구가 소개되었다(학술논문 '반려동물과 프로바이오틱스', 조석철, 2024).
특히 고양이는 고래로 우리 민족의 사랑을 받아왔다. <기기묘묘 고양이 한국사>(바다루, 2021)에 의하면 고양이를 일본에 전해 준 게 신라 장보고 선단으로 추정된다. 고양이는 그 이전부터 우리 민족과 함께 했다. 고양이는 쥐 잡는 역할만이 아닌 반려동물로서 역할했고, 한 마리 얻는 것이 쉽지 않았을 만큼 귀하기도 했다.
이규보는 <동국이상국집>에 쓴 <검은 아기 고양이를 얻다得黑猫兒>라는 시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고양이를 세심히 묘사한다.
가닥가닥 털이 파랗고 동글동글 눈은 푸르고
모습은 범새끼 같으며 울음은 사슴을 겁준다
발톱 세워 들쑤시다 꼬리 치며 점차 따르네
- 이규보
위 책은 고양이 관련한 왕가의 이야기도 전한다. 효종의 딸 숙명공주는 "시가 어른께 정성을 바친다고 하면서 어찌 고양이만 품고 있느냐?"는 친정아버지의 편지를 받았을 정도로 고양이를 극진히 사랑했다. 숙종은 고양이 금손金孫과 수라상을 겸상하고, 용상에서 함께 잠에 들었다. 금손은 숙종이 세상을 뜨자 식음을 전폐하다 숙종의 묘 곁에 묻혔다.
영조도 궁궐의 고양이를 특별히 '궐냥이'라고 부르며 아꼈다. 영조 때 고양이를 많이 키우면서 비단을 입히고 진미를 먹이는 '묘마마'도 등장했다. 요즘 말로 조선시대의 캣맘이다. 지금은 고양이 수난 시대로 길고양이 문제가 대두되지만 고양이는 오랜 세월 정서적 교감을 나눴던 반려동물이었다.
형국의 발견을 상서롭다고 생각한 이유
이 길에서 우리 민족과 함께 해온 고양이 형국을 본 것이 행복하고 상서롭다는 생각이 든다. 마이산은 금남정맥의 초입에서 암수 음양합덕陰陽合德과 오행산의 형국을 지니고 계룡산으로 뻗어 풍수적 형국을 결국結局하는 수태극水太極의 시작점이다.
호남의 지붕 진안고원을 대표하는 마이산의 이 같이 솟아오르는 기상이, 조금 떨어진 주변에선 보호와 행운, 평화를 상징하는 고양이 형국으로 순화되고 있다는 점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조화롭게 오랫동안 안정과 평화를 누릴 수 있다.
일부 풍수가는 마이산에서 계룡산으로 향하는 기맥을 수도 한양으로 향하는 화살(마이산)과 화살 촉(계룡산)으로 여겨 경계하기도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 한국의 산야는 서로 보하며 조화를 우선한다. 이 마이산의 또다른 모습인 고양이 형상을 나무 장식이나 패치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 나무는 성장과 번영을 뜻하고 고양이는 긍정적 에너지를 뜻하므로 재물운과 건강운, 활력 상승의 상징이 된다.
행복한 마음을 갖고 다시 걷기를 이어간다. 이 길로 조금 더 가다가 길에서 한 귀한 분을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공식 길 이름은 없지만 어느 길보다 수려하다고 생각했던 이 길이 생긴 유래를 그 분을 통해 알게 되었다.
용담호는 국내 5대 댐의 거대 규모로, 68개 마을, 1만 2600여 명의 실향민을 만들었다. 댐의 비극은 고향을 떠난 상실감이나 그리움 정도가 아니라 돌아갈 고향이 아예 없는, 생에 가장 큰 절망적 아픔을 만들었다는 데 있다. 한반도 분단으로 인한 실향민도 지금은 갈 수 없지만 고향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댐 수몰민의 대표 격으로, 길을 걷다 만나게 된 그 분의 이야기를 다음호에 이어간다.
▲ 용담호반길 산자락을 따라 굽이굽이 돌아가며 호수 주변의 수려한 자연 속에 파묻히는 길을 걷는다.
ⓒ (사)사람길걷기협회 기자 admin@slotnara.info
해남에서 출발한 한트 국토종주 1기 팀이 10월 25일 진안고원의 마이산길을 걸었다. 이날 25km 가량 걷기를 마치고 난 저녁, 마침 숙소 앞의 마이산공원에서 열리고 있던 지역 축제에 참가했다. 흥에 겨워 놀다 보니 마지막엔 무대 앞 마당에 단체로 나가 춤까지 추게 되었다. 단원 중 한 분은 30년만에 춤을 춰 보았단다. 나를 포함해 아마 단원들 거의가 30년까진 아니라도 춤을 춰 본 지 수십년은 된 것 같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절반을 훌쩍 넘는 동안 참 바쁘게도 살았다. 아니, 생각해보니 젊은날 반짝 타오른 걸 제외하면 어린 학창 시절부터 인생의 거의를 바쁘게 살았다. 국토종주 단원들에게 국토종주는 하나의 춤사위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미뤄뒀던 것을 너울너울 풀어내는 인생의 춤사위이다.
지도에 없는 길을 찾아 나서다
어젠 마이산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망할 수 있는 용마산을 넘었었다. 은수사로 암마이산과 숫마이산 사이 천왕문을 통과해 진안 군청을 지나고 용담호 상류 마을인 상전면 교동마을에서 걷기를 마쳤었다. 어제의 걷기의 감동이 가시지 않은 채로 걷기를 마친 곳에서 다시 걷기를 이어간다.
▲ 금강 상류의 물줄기가 용담호로 합해지는 곳. 왼쪽에 우리가 건너는 죽도교가 보인다.
ⓒ (사)사람길국토종주
10월 26일 오늘은 용담호변을 걷는다. 용담호는 호안에 별다른 시설물이 없이 산줄기만 거대 호수를 싸고 있어 자연 풍경에 온전히 빠져드는 장관을 만들고, 신비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또 고원 지역 답게 물안개의 조건인 바람이 적고 일교차가 커서 수면 위로 춤추듯 아침 하얀 물안개가 몽환적이다.
출발해서 금강 상류가 용담호에 합류하는 곳의 죽도교를 건너고 있는데, 혼자 아침 러닝하는 분이 8km를 순식간에 달려갔다가 어느새 되돌아오신다. 국토종주 원칙대로 먼저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니, "사진 찍어드릴까요?"라는 답으로 돌아왔다. 뜻밖의 호의에 감사하게도 소중한 사진을 남기고, 다리 건너 용담호 둘레길로 들어섰다.
말이 둘레길이지 이 길의 공식 명칭은 없다.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전국의 많은 길을 걸어봤어도 이렇게 오붓하게, 넓고 편안하게, 멋진 경관과 함께하는 호반길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 아름다운 길이 이어진다. 숨겨두고 오래오래 때 타지 않게 간직하고 싶은 길이다. 명칭이 없으니 일단 용담호반길이라고 해 둔다.
때 아닌 고원 호숫가 깊은 카페
용담호반길 초입의 호숫가에 의외의 멋진 카페가 나타난다. 카페로 향하는 길가부터 갈대와 꽃을 장식한 감각이 남다르다. 아침을 일찍 먹고 출발한 터라 커피가 고팠다. 유혹이 세다. 누군가 말한다.
"아, 커피 한 잔 하면 좋겠다."
국토종주하면서 시작부터 커피숍에 간 일이 없기 때문에 포기 상태에서 한 말이었다. 다른 단원이 말을 받는다.
"아직 문 안 열렸을 거야."
포기는 강화된다. 지금 시간이 아침 8시 40분이다. 그런데 뜻밖의 반전이 생겼다. 문이 열려 있다. 창 안을 보니 불도 켜져 있다. 뜻하지 않았던 기배기 카페에 들렀다. 안은 밖보다 훨씬 놀라웠다. 흰색 벽과 이중 기둥으로 멋스러움을 연출한 실내는 유럽의 어느 호숫가 성이라 해도 부럽지 않을 것 같다.
창 밖의 호수는 청초한 빛에 물들고, 너른 데크에 하나둘 나뭇잎이 떨어지고 있다. 그제만 해도 숨막히는 도시에 있었는데, 먼 고원 호숫가, 깊고 조용한 카페에 앉아 차 한 잔의 여유라니 꿈 같다.
▲ 카페 앉은 곳에서 창 너머 가을이 활짝 핀 데크와 청초한 용담호가 손에 닿을 듯 한 눈에 들어온다.
ⓒ (사)사람길걷기협회
카페를 나왔는데 카페 사장님이 "이거 갖고 가세요" 하며 급히 뛰어나오신다. 우리가 점심 식사 걱정하는 얘기를 들으셨을까, 냅킨에 오징어포 여러 장을 싸서 건네주신다. 국토종주를 하며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곤 한다.
국민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는 꿈
우리의 국토종주는 어떤 다른 목적을 갖지 않는다. 이목을 받거나 모금을 하거나 여러 수단으로 국토종주가 이용되는 것을 보곤 한다. 국토종주는 수단이 아닌 그 자체가 목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국토를 제대로 볼 수 있다. 우린 우리 국토의 향기를 맡기 위해 걸을 뿐이다.
지역민을 만나면 많이 듣는 얘기 중 하나가 "나도 가고 싶어요", "저도 따라 갈래요"이다. 식당에서 하루종일 고된 일을 하는 할머니에게도, 밭에서 구슬땀을 흘리던 아저씨에게도, 국토종주는 하나의 꿈일 수 있다.
내가 일해온 터전, 숱한 세월 묵묵히 땀흘려며 지켰던 이 땅의 실체를 보는 것은 삶의 한 줄기 섬광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우리 국토의 주인공들을 모시고 같이 이 길을 걷고 싶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이 땅을 걷는 날 우리 모두는 하나로 연결될 것이다.
▲ 용담호반길 용담호를 낀 산자락을 따라 호반길이 조성돼 있다.
ⓒ (사)사람길걷기협회
호젓하고 아름다운 호반길을 걸어간다. 용담호를 낀 산자락 호반길을 걷는 길에 산허리를 휘돌고 넓은 수면을 뒤덮어가는 호수가 깊고 맑고 청명한 아름다움으로 빛난다. 그런데 용담호반길 초반(길 시작점부터 650m 거리)에 생각지도 못했던 동물을 만났다. 말의 귀를 닮아 이름 붙은 마이산이 고양이로 둔갑해 있다.
심상치 않다. 뒤로 대덕산과 고산, 감투봉이 버티고, 앞에 용담호를 안고 있는 상전면의 호반길에 마이산이 고양이 모습을 하고 나타난 것이다. 머리와 몸체와 꼬리까지 완전한 모습이다. 우리가 어제 지나온 마이산 남쪽 2km 정도 앞 마을인 평지리에도 고양재라고 불렀던 고양이혈이 있었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 장수 이어령이 와서 고양이혈이 좋은 혈기라 하여 붓으로 능선을 끊었다는 얘기가 전한다(진안문화원 발간 <마이산 학술연구> 중 '마이산지역의 민간신앙', 이필영, 2014).
고양이 형상으로 나타난 마이산
여기는 마이산에서 직선거리로 11km 정도 떨어진 곳이라 풍수적으로 마이산의 기가 영향을 미치는 지역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 마이산이 고양이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풍수의 형국으로 볼 때 의미가 있다. 고양이 형국은 풍수적으로 나쁜 기운을 막고 평화와 행운을 불러온다.
▲ 마이산이 고양이로 보이는 곳 용담호반길에서 용담호 산줄기 뒤로 완벽한 고양이 모습이 보인다.
ⓒ (사)사람길걷기협회
고양이 형국이 나왔으니 내친김에 고양이 얘기를 해보자. 조선시대에 고양이는 장수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서양에서 고양이가 9개의 생명을 가졌다고 할 만큼 위험을 피하는 능력과 생명력을 높이 산 것과 일맥상통한다. 고양이 발생지인 이집트는 고양이를 바스테트 여신의 현신으로 신성시했다. 고양이를 죽인 사람은 극형에 처했고, 죽은 고양이는 미라를 만들어 장례를 치러 주었다.
농경사회에서 식량을 저장해야 할 필요와 쥐를 잡는 고양이의 사냥 본능이 고대부터 인간과 공생 관계를 만들었다. 조용하고 독립적이며 대소변도 스스로 알아서 하는 특성 상 인간과 교감을 나누는 동반자의 지위도 얻었다. 실제로 인간과 고양이의 상호작용이 옥시토신을 분비해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완화하고 심장 건강을 개선하는 등 정신·신체적 이점을 준다는 연구가 소개되었다(학술논문 '반려동물과 프로바이오틱스', 조석철, 2024).
특히 고양이는 고래로 우리 민족의 사랑을 받아왔다. <기기묘묘 고양이 한국사>(바다루, 2021)에 의하면 고양이를 일본에 전해 준 게 신라 장보고 선단으로 추정된다. 고양이는 그 이전부터 우리 민족과 함께 했다. 고양이는 쥐 잡는 역할만이 아닌 반려동물로서 역할했고, 한 마리 얻는 것이 쉽지 않았을 만큼 귀하기도 했다.
이규보는 <동국이상국집>에 쓴 <검은 아기 고양이를 얻다得黑猫兒>라는 시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고양이를 세심히 묘사한다.
가닥가닥 털이 파랗고 동글동글 눈은 푸르고
모습은 범새끼 같으며 울음은 사슴을 겁준다
발톱 세워 들쑤시다 꼬리 치며 점차 따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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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책은 고양이 관련한 왕가의 이야기도 전한다. 효종의 딸 숙명공주는 "시가 어른께 정성을 바친다고 하면서 어찌 고양이만 품고 있느냐?"는 친정아버지의 편지를 받았을 정도로 고양이를 극진히 사랑했다. 숙종은 고양이 금손金孫과 수라상을 겸상하고, 용상에서 함께 잠에 들었다. 금손은 숙종이 세상을 뜨자 식음을 전폐하다 숙종의 묘 곁에 묻혔다.
영조도 궁궐의 고양이를 특별히 '궐냥이'라고 부르며 아꼈다. 영조 때 고양이를 많이 키우면서 비단을 입히고 진미를 먹이는 '묘마마'도 등장했다. 요즘 말로 조선시대의 캣맘이다. 지금은 고양이 수난 시대로 길고양이 문제가 대두되지만 고양이는 오랜 세월 정서적 교감을 나눴던 반려동물이었다.
형국의 발견을 상서롭다고 생각한 이유
이 길에서 우리 민족과 함께 해온 고양이 형국을 본 것이 행복하고 상서롭다는 생각이 든다. 마이산은 금남정맥의 초입에서 암수 음양합덕陰陽合德과 오행산의 형국을 지니고 계룡산으로 뻗어 풍수적 형국을 결국結局하는 수태극水太極의 시작점이다.
호남의 지붕 진안고원을 대표하는 마이산의 이 같이 솟아오르는 기상이, 조금 떨어진 주변에선 보호와 행운, 평화를 상징하는 고양이 형국으로 순화되고 있다는 점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조화롭게 오랫동안 안정과 평화를 누릴 수 있다.
일부 풍수가는 마이산에서 계룡산으로 향하는 기맥을 수도 한양으로 향하는 화살(마이산)과 화살 촉(계룡산)으로 여겨 경계하기도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 한국의 산야는 서로 보하며 조화를 우선한다. 이 마이산의 또다른 모습인 고양이 형상을 나무 장식이나 패치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다. 나무는 성장과 번영을 뜻하고 고양이는 긍정적 에너지를 뜻하므로 재물운과 건강운, 활력 상승의 상징이 된다.
행복한 마음을 갖고 다시 걷기를 이어간다. 이 길로 조금 더 가다가 길에서 한 귀한 분을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공식 길 이름은 없지만 어느 길보다 수려하다고 생각했던 이 길이 생긴 유래를 그 분을 통해 알게 되었다.
용담호는 국내 5대 댐의 거대 규모로, 68개 마을, 1만 2600여 명의 실향민을 만들었다. 댐의 비극은 고향을 떠난 상실감이나 그리움 정도가 아니라 돌아갈 고향이 아예 없는, 생에 가장 큰 절망적 아픔을 만들었다는 데 있다. 한반도 분단으로 인한 실향민도 지금은 갈 수 없지만 고향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댐 수몰민의 대표 격으로, 길을 걷다 만나게 된 그 분의 이야기를 다음호에 이어간다.
▲ 용담호반길 산자락을 따라 굽이굽이 돌아가며 호수 주변의 수려한 자연 속에 파묻히는 길을 걷는다.
ⓒ (사)사람길걷기협회 기자 admin@slotnara.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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